1884년 여름, 사진기의 소문을 들은 고종은 친히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하였다. 사진기로 촬영하면 그림을 그린 것보다도 정밀하게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형체의 종이가 나온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왕실까지 들어갔고, 왕은 직접 사진을 촬영해보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진을 촬영하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속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고종은 퍼시벌 로웰을 시켜 사진을 처음 촬영한다. 이때 촬영한 사진이 그의 최초의 사진이라는 것은 후일 윤치호 등의 증언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윤치호가 살던 당시의 조선의 왕은 누구였는가?
Ground Truth Answers: 고종
Prediction:
그러나 고종은 윤치호의 상소에 내심 동의하면서도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12월 내내 한성부를 왕래하며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 전단지를 배포했다. 이후 강원도 삼척군과 울진군에서 을사조약 무효 선언과 동시에 의병이 일어났고 쇠퇴해가던 의병 활동에 불을 지피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와 같은 반대 운동에 힘을 얻은 고종은 을사조약의 무효를 선언한다.
윤치호가 살던 당시의 조선의 왕은 누구였는가?
Ground Truth Answers: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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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의 신하였던 윤치호는 '용모가 상당히 출중했다.[55]'라는 평을 내렸다. 그러나 윤치호는 그를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공인으로서는 신망을 얻지 못한 점에서 영국의 찰스 1세와 비슷하다.[55]'고 평가했다. 윤치호는 자신의 윤치호 일기에서 조선은 유교 국가인데 그런 나라의 임금이면서도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임종은커녕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유교적 기준에 의하면 고종은 패륜을 저지른 왕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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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 Truth Answers: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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